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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뉴스

이춘재 "불 찾아가는 불나방처럼 연쇄살인 14건 모두 내가 했다"

경찰 재수사 개시에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해 자백"…8차사건 재심 증인 출석
첫 사건 발생 34년 만에 모습 드러내 4시간 동안 무덤덤하게 증언
'속옷ㆍ스타킹' 범행 시그니처? "반항제압, 재갈 물리려던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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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의 장기미제 사건으로 기록돼 있던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을 자백한 당사자인 이춘재(57)가 1980년대 화성과 청주에서 벌어진 14건의 살인에 대해 "내가 진범"이라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그는 '진범논란'을 빚은 8차 사건 재심 청구인인 윤성여(53)씨에게는 "사죄하겠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윤씨는 "재심 결과가 나와봐야 한다"는 소회를 밝혔다.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2일 열린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증인으로 출석한 이춘재는 연쇄살인사건 일체를 자신이 저질렀다고 공개 법정에서 재확인했다.


이춘재 연쇄살인 첫 사건 발생 34년 만에 일반에 모습을 드러낸 이춘재는 지난해 경찰의 재수사가 시작된 후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재수사 과정에서 아들과 어머니 등 가족이 생각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모든 것이 다 스치듯이 지나갔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이 교도소로 찾아와 DNA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추궁하자 1980∼1990년대 화성 12건과 청주 2건 등 자신이 저지른 14건의 살인 범행, 30여건의 성범죄에 대해 모두 자발적으로 털어놨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자백한 이후에는 주기적으로 연락·면회가 오던 가족들과 왕래가 끊겼다고 그는 말했다.

 

이춘재는 당시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에도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은 것에 대한 질문에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범행 후 증거 등을 은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쯤은 의심 받으리라 생각했는데 '보여주기 수사'가 이뤄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했다"면서 "어떤 계획이나 생각을 갖고 한 것이 아니라 불을 찾아가는 불나방처럼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사건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지난 30년 넘게 여러사람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자신만의 '시그니처'(범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성취하기 위해 저지르는 행위)인 피해자 속옷이나 스타킹을 이용한 결박·재갈과 관련해서도 담담하게 진술했다.

 

이춘재는 "결박의 주목적은 반항제압, 재갈을 물린 것은 소리를 막기 위함이었다"며 "속옷을 얼굴에 씌운 경우는 피해자가 나의 신원(얼굴 등)을 알아차릴 것 같은 상황에서 한 일"이라고 말했다. 딱히 자신의 범행을 과시하기 위해 한 행위는 아니라고 한 것이다.

 

이춘재는 재판 말미에 "제가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형생활을 한 윤씨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면서 "저로 인해 죽은 피해자들의 영면을 빌며, 유가족과 사건 관련자 모두에게도 사죄드린다"고 사과했다.

 

청록색 수의를 입고 하얀색 운동화를 신은 채 마스크를 쓰고 법정에 들어온 이춘재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군데군데 흰머리가 성성했다. 오랜 수감 생활 탓인지 얼굴 곳곳에는 주름이 깊게 패어있었다.

 

앞서 이춘재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증인선서를 한 뒤 자리에 앉아 변호인 측 주 신문에 답하기 시작해 총 4시간 넘는 시간 동안 사건 당시를 회상했다.

 

증인신문은 변호인과 검찰 양측의 질문이 서로 겹치는 탓에 주 신문을 맡은 변호인 측에서 대부분 진행했다.

 

재판부는 이춘재가 증인의 지위에 불과하다며 촬영을 불허해 언론의 사진·영상 촬영은 이뤄지지 못했다.

 

다만 이춘재의 증언에 국민의 관심이 높은 점을 고려해 88석 규모(사회적 거리두기로 44석 운용)의 본 법정 뿐만 아니라 별도의 중계법정 1곳을 마련해 최대한 많은 방청객이 재판을 방청할 수 있도록 조처했다.

 

윤씨는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이춘재가 법정에 나와 진실을 말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며 "다만 그가 진실을 밝혀줘서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중학생) 양이 성폭행 피해를 본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하면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과 3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변호인 양측은 모두 이춘재를 증인으로 신청했으며,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춘재가 법정에 나와 일반에 공개된 것은 그가 자백한 연쇄살인 1차 사건이 발생한 1986년 9월로부터 34년 만이며, '진범논란'을 빚은 8차 사건이 발생한 1988년 9월로부터 32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