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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뉴스

이춘재 8차 사건 담당 검사 "윤성여씨 담장 넘은 것 확실치 않다"

"윤씨 억울함 호소 없고, 법정서 시인해 강압수사 몰랐다"
"체모 감정서, 국과수 감정 믿어…검토는 부족했다" 인정
노동환경연구원 소장 "동일인 체모로 보기 어려운 감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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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가 자신의 얼굴을 공개한 채 7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춘재 연쇄 살인 8차 사건 피의자 윤성여(53) 씨의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 최모씨는 “당시 현장검증에서 윤씨가 담장에 손을 짚고 상체를 올린 것까지는 기억나지만 넘어간 것까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수원지법 제 12형사부(부장판사 박정제) 심리로 열린 7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최씨에게 당시 현장검증, 감정서, 경찰 강압 수사 여부 확인 등이 집중적으로 질의됐다.

 

이날 최씨는 “현장검증 당시 윤씨가 담장을 넘어 침입하는 것을 재현할 때 담장에 상체를 걸친 것까지는 확실히 기억나고 담장을 넘어간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나올 때는 이전에 넘어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체까지 올라가고 다리를 걸친 것까지만 확인하고 넘어가는 것은 검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검증에서 다리가 불편한 윤씨를 형사들이 부축하거나 도와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씨가 다리가 불편하고 넘어가기에는 담장이 높다는 점에 대해 지속적인 질문이 이어지자 최 씨는 “윤씨가 담장을 넘어간 것은 기억나지 않고, 확실하지 않다”고 정정했다.

 

이례적인 현장검증과 참여 취지에 대해 변호인 측에서 묻자 최씨는 “현장검증은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윤씨의 자백이 신빙성이 있는지 실제로 다리가 불편한 윤모씨가 범행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또한 검사 측이 질문한 경찰 수사 당시 감금, 폭행 등 강압에 의한 수사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당시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았고, 법정에서도 순순히 모든 내용을 진술했다. 또한 육안상으로 상처가 없는 점 등 경찰의 강압 수사는 생각치 못했다”고 답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윤씨의 체모가 동일하다는 방사성동위원소 검출 감정서에 대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고, 오차 범위도 40%가 넘어가는 것에 의구심을 품지 않았냐는 재판부와 변호인 측 질문에 “국과수의 감정이었고, 크게 의문을 갖지 않았다. 또한 법정에서 필요하면 증인이 되어 설명해주겠다는 얘기를 들어 동일하다는 결론만 확인했다. 꼼꼼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날 때까지 윤성여씨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없었다. 다만 “억울한 사람이 1명이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이날 공판에 참여한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당시 증거로 사용된 감정서에 대해 “통상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오차범위인 최대치인 20%가 넘어서는 40%에 달해 신뢰성이 떨어지고, 일부 수치의 경우 40%가 아니라 200%, 300%의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동일인의 체모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춘재가 근무했던 전기회사 특성상 현장에서 채취된 체모에서 검출된 특수한 핵종인 티타늄 등의 성분으로 미루어 이춘재의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오는 26일 5명에 대한 증인신문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당시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자택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잠을 자다가 성폭행당한 뒤 숨진 사건이다.

 

윤씨는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돼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씨는 사건 당시 1심까지 범행을 인정했다. 이후 2, 3심에서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윤씨는 감형돼 2009년 출소했고, 이춘재의 자백 뒤 재심을 청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