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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칼럼

"코로나" 암울 날려버린 영화감독 Bong J.H.

                                                           변동현 논설고문

 

국내에선 신종바이러스로 암울한 상황인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Parasite)'이 전 국민의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2월10일 아침 10시(한국시간) 미국 헐리우드로부터 날아든 낭보!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영화상 4관왕(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을 차지한 것이다. 믿기 어려운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그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나쁜 문화인'으로 분류되어 차별 받기도 했다. 한국 영화사 101년만의  경사이자,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첫  비영어권  작품상이다. 작년에 독일의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따냈을 때도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었다.

 

이번 일은 권투선수 홍수환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말을 생각나게 했다(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WBA밴텀급 타이틀매치). 라디오중계방송 아나운서 이광재씨는  '국민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하며 목청높혀 홍선수의 승리를 생생하게 전했는데 그 말 또한 한참 동안이나 유행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아버지는 중2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미군 부대 식당에서 일하면서 아들을 키웠으니 정말 헝그리 주먹의 기적같은 승리였다.  또한 봉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BTS의 성공과 비견된다. K-영화라는 새 용어도 등장한다.

 

  이번에 봉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미국에는 헐리우드가 있고, 한국에는 충무로가 있다'고 자랑스럽게 일성을 내었다.  뉴욕타임즈(NYT, 2020.2.10)는 '아카데미상의 정체성을 바꾼 이변'이다(reflects Academy’s evolving identity), '인종차별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선포(vowed to diversify)한 것이다'. '헐리우드가 봉감독과  사랑에 빠졌다(Hollywood had fallen in love with Bong JH)' 등 극찬을 쏟아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자에서 '한국의  민주화 성공이 이러한 위대한 탄생의  배경이다'라는 정치적 평가를 내놓기도 하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국 영화 역량을 세계에 증명했다'는 축하인사를 보냈다. 한국인도 봉 감독 덕에 잠시나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암울해진 기분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야권에서는 총선에만  몰입할 뿐 어떠한 반응도 내 놓지 않고 있다.

 

 젊은 시절 봉씨 부부 역시 홍수환처럼 영화 ‘살인의 추억’ 전까지는 수입이 적어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고백한 바 있다. 대학 동기가 쌀을 가져다줄 정도였다고 한다. 입주가정교사 생활로 겨우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영화에 꿈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용기있는 일이다. 그만큼 '기생충'에 나오는 장면처렴 반지하  공간에서 10년 이상 인고의 시간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도 충무로에는 수많은 젊은 감독들이 일정한 소득도 없이 영세한 영화사에서 잡부와 같은 생활을 한다. 봉감독도 '2년 가까이 일하며 제작사에서 받은 돈을 다 합쳐보니 450만원이었다. 이걸 20개월로 나눠봐라'며 회상한다. 2007년 이경식 감독은 영화 예비감독의 비참한 생활을 8분 짜리 단편영화로 발표한 적도 있다. 이 영화는 '충무로의 조감독은 비참하다. 전국을 발로 뛰며 로케이션 헌팅에 열중하느라, 시도 때도 없는 작업 일정에 맞추느라, 여자친구와 제대로 된 데이트도 불가능하고, 멀어지는 그녀를 잡을 수도 없는 노동조건을 암시한다'(시네21, 2007).  

 

  2009년 모 영화 조감독은 '나는 영화스태프로서 촬영현장에서 인간으로 생각되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하나의 졸병일 뿐이었죠'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출장지 한 모텔에서 스스로 꽃다운 목숨을 끊었다. 고인의 당시 연봉은 247만원이었다고 한다. 2011년 2월 작은 영화사 소속의 한 여성 시나리오 작가(영화 '방자전' 조감독)의 자살도 영화인들을 슬프게 했다. 영화노조가 이 후배의 주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고인의 후배라고 밝힌 네티즌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초과업무에 대한 수당이나 보상은 전혀 없다"며 "영화 제작사의 횡포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머니투데이). 그러니까 영화판에서 일하는 제2.제3의 봉준호 후배들도 여전히 노동권은 커녕 인간적 대우를 제대로 못받고 있는  '영점하의 새끼들'(박승훈의 소설)인 셈이다. 봉감독의 이번 쾌거는 정말 '쓰레기더미 속에서 피어 낸 한송이 장미꽃'(1966.12.14, 영국 Evening Star 로완(Carl T. Rowan 기자)이라 할 수 있는 기적같은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감독의 수상소감도 인상적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 말을 하셨던 분이 바로 여기 계시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님이다.'는 말에 시상식장을 가득 메웠던 참석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찬사를 보냈다. 14살의 어린 영화광 시절부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던 봉준호 감독이 거장 감독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는 또 한 명의 영화 친구이자 스승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영화가 미국 관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부터 항상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신 분이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님, 아이 러브 유. 그리고 함께 노미네이트 된 토드와 샘 모두 내가 너무 존경하는 감독들이다. 주최 측이 허락한다면 오스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5등분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해 할리우드 영화인들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수상  소감에 담긴 메시지들은 문화권의 차이를 넘어 현장의 영화인들에게 매우 따뜻하게 다가 갔을 것이다. 수상장면을 지켜봤던 모든 한국인들의 박수 속에서도 감동으로 전해졌으리라. 작품상 시상자로 나선 제인 폰다는 '우리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며 의미심장한 인사를 전했다. 

 

 이번 '기생충'의 아카데미 소식은 봉감독의 영광이자 대한민국의 경사이다. 한편 이런 기쁜 소식에 자신의 어두운 처지에 있는 미래의 젊은 영화감독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좋은 소식이 되었으면 한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영화계에도 새 바람이 불기를 고대한다. 그래야 제2.제3의 봉준호가 탄생될 수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신종 코로나 폐렴으로 고생하는 환자들 가족들 및 격리로 고통받는 모든 분들께도 무탈하길 빈다. 이번 봉감독의 영광이 모든 국민들이 겪는 답답함에도 큰 위안이 되길 바란다. 아울러 총선을 앞두고 정쟁이 극대화되는 정치판에도, 그리고 편파.가짜 정보를 양산해서 국론을 분열시키는 언론계에도 자성의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전 서강대 교수/한국방송학회장/Fullbright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