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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평화 통일의 주춧돌이 한의학이 되기를

가천대한의과 대학 박 완 수 교수

근래에 이르러 북한과의 교류설 김정은 답방등 북한과의 화해 무드가 삐걱대고는 있지만 의학 분야에서 통일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바램을 가지며 나름대로 만남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가천대한의과대학병리학교실 박완수 주임교수를 만나 한의학과 남북 교류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편집자 주>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간단하게 소개를 한다면

 

- 현재 가천대한의과대학 병리학교실 주임교수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군의관으로 육군 소령으로 제대 얼마후에 학교에서 한의학도들과 공부하며 생활하고 있으니까 사회 생활에는 서투르다고 하겠지요. 경희대 한의학과를 입학할 때 전체 수석 입학 했고 전체 장학금으로 6년동안 공부를 했으니까 학교 도움이 컸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제대후 한의학 협회에서 수석 부회장으로 회장님을 보필하며 활동한 것이 요란하게 장식이 된 것 같습니다.

 

한의학에서 병리학이라면 약간 의아함을 갖는 분이 많은데 양의학에서 예방의학이니 병리학이니 여러가지 분야로 나누어진 기초의학과 같이 한의학에서도 병리학이 기초의학으로 분류되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현재까지 우리 분야에 공부를 하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아 드러나지 않기때문이지요.

 

▶2025 평화 통일 포럼 창립 기념회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졌는데 설명을 해준다면..

 

-전통 의학 등을 활용한 남북동질성 회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2025년을 평화통일 원년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시민, 보건의료계, 종교계, 학계, 언론계, 예술계  관련분야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2025 평화통일 포럼" 의 출범을 기념하며 전통의학 등을 활용하여 현 시대에 부응 하면서도 평화통일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다양한 민족동질성 회복 방안을 제안 및 논의 하는데 목적을 두고 창립 되었습니다.

 

관심을 끌 수 있는 제안은 서해 백령도 근처의 섬에서 북한의 개성 가까이 있는 섬과 거리가 불과 몇킬로 밖에 안되는데 구태여 유엔중립국 감시단과 부딪치지 말고 우리의 힘으로 다리를 건설 주민들끼리 소통을 할 수 있게 다리 건설을 추진하자는 의견이 도출 되기도 했으며 통일을 대비하여 적십자사에서 크리스마스실을 판매 기금을 마련하는 것처럼 우리도 통일을 대비하는 기금 마련을 실을 제작 전 국민을 대상으로 판매 기금을 마련  통일을 대비 하자는 의견등 굉장히 건설적인 의견이 많이 나왔습니다.

 

또한 제가 어려서 전통무예에 흥미를 느껴  수련을 했는데 지금까지 모든 것이 전승 되어 온 것이 아니고 일부가 유실 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우연히 북한에 유실 된 부분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  복원 하려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번 평화 통일포럼은 상당히 의미가 컸던 행사였으며 전 국회의장을 역임했던 정세균 의원, 원혜영 의원 등도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아주었습니다.

 

▶한의학 협회 수석 부회장으로서 상당 기간 일을 했는데 ...

 

- 아직까지 해결 되지 못한 한의학과 양의학의 갈등(?) 이랄까요    최대한 근접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것은 사실입니다.
회장님을 보필 하는데 최선을 다했으며 한의학의 발전에 관한 것이면 무조건 달려 들었고 해결을 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저의 성실함과 노력을 인정해주어 연임이라는 중책을 주었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락에 파병 그곳에서 군의관으로 복무를 하셨던것으로 나와 있는데...

 

- 간단하게 예전에 썼었던 글로 대신하여 그곳에서의 생활을 말씀 드리는 걸로 하곘습니다

 

■ 눈물이 흐르는 밤 ■


비행기의 굉음이 귓가를 때린다. 우리나라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의 민간항공기에서 는 들어볼 수 없는 커다란 소리가 웅웅거 리며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다. 이제 드디 어 하늘로 떠오르는 것인가 보다. 드디어, 이라크의 하늘로 들어가는 것인가 보다. 쿠웨이트에 도착한 지 3일 만에 이라크 나 시리아의 제마병원으로 가기 위해 미 공군 수송기를 타고 쿠웨이트의 국경을 넘어 이라크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라크에서는 수송기가 땅에서 이륙할 때나 땅으로 착륙할 때 모두 전투비행(빙글빙글 돌면서 급 격히 회전하며 하강하거나 상승하는 것)을 하게 된다고 했다. 역시 빙글빙글 돌면서(혹시 모를 적 군의 로켓포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올라가기 때문인지 아니면, 무거운 철모와 방탄조끼 때문인지 벌 써부터 속이 울렁거린다.


비행기의 굉음 때문에 큰 목소리로 말을 해야 하긴 했지만 옆에 앉은 미군과 대화도 나누긴 하였 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남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라크 온지 얼마나 됐느냐, 이 곳 생활은 괜 찮은가?, 미국 어디가 집이냐’ 정도를 물어보았을 것이다.


이라크에서 만나는 외국군(미군 뿐 아니라, 이탈리아군, 스페인군, 영국군 혹은 일본군에게까지)에 게 처음 물어보는 내용은 어쩔 수 없이 비슷하다. 다들 고향을 떠나 머나먼 이국의 하늘을 바라보 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라크에 온 외국군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때가 있었다. ‘나는 왜 여기에 와 있는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문득 한의대를 졸업할 때가 떠오른다. 풋내기 한의사가 되어 ‘의사’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임상의사’의 길을 걸어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한국과학기술연구 원(KIST)과 경희대 한의학과의 학연협동 석사과정’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대학원 수업은 경희대에서 듣되 실험연구는 KIST에 매일 같이 출근하면서 한약이나 한국 자생의 식물체로부터 유기용매를 이용한 유효성분(항암이나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는)을 분리해내는 실험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한의학과를 다니면서 거의 배우지 않았던 실험실 생활이라 비이커 닦 고, 컬럼 걸고, 분획물을 감압 농축하는 등등의 일들이 녹녹치 않았다.


처음 3개월은 무급으로 다음 1년은 월 15만원을 받았으니 94년의 현실이기는 했지만 어떻게 생활 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어찌됐든 한의사 초년의 세월은 그렇게 보냈다. 실험실에서 비이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1년 반 동안의 생활 중에 때로는 갈등이 없을 수 없었 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한시라도 빨리 환자를 보러 가야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한의학적 고 전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 생각이 다 정리가 되기 전에 군대에 가게 되었다. 이른 바 ‘나라의 부름’을 받고. 그리고 한방군의관이 되어 거의 8년이 다 되어 갈쯤 다시 ‘나라의 부 름’을 받고 이라크 파병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라크에 가서 생각보다는 많은 환자를 보았다. 특히 이라크 국민들, 때론 가여워 보이기도 하고 때론 강인해 보이기도 하였던, 그리고 우리 한국군과 미군, 이탈리아군까지. 나의 한의학적 치료가 달성한 것은 없다. 완치를 보여준 것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매일매일 침을 놓았고 한약을 주 었으며 매일매일 환자들은 나에게 치료받기를 원했다. 그 뜨거웠던 몇 개월간의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은 뒤, 그렇게 또 하나의 인연을 마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