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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칼럼

                                                       허광섭 <논설위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몇 번 간 음식점이 있다. 서울 종로 이화동 골목에 설렁탕집이 있다. 간판부터가 허름하다. 들어서면 분위기가 오래된 음식점임을 느끼게 한다. 알 만한 사람들의 싸인 몇 장들이 벽에 붙어있다. 신문인지 주간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국무총리를 지내신 고건의 사진과 음식점과의 인연이 실린 글도 액자에 넣어 걸려 있다.

 

그날도 지인이 수술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느냐고 했더니 그 집 설렁탕이 먹고 싶다 해서 가게 되었다. 자리를 정하고 앉았는데 맡은 편벽에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 왔다. 가로세로 60센티 쯤 되는 액자 한가운데 글자 한자가 액자 중앙에 자리 했다.

 

성誠, 말씀언 변에 이룰 성을 붙인 성誠이다. 보기에 좋은 글자꼴은 아니었으나 획의 떨림과 붙임을 보니 연세가 드신 분의 글인 듯싶었다. 글체에서 깊은 내공이 보였다. 그래서 주인에게 액자의 유래를 물었더니 음식점에 자주 오시는 분이 중국에서 가져 온 것이란다.

 

그 글을 보면서 학자, 지식인, 불쏘시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라는 말과 그 말을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를 선택하고 그 사람이 적임자라고 정부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이 나라의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 된지 66일 만에 임명을 받은 지 35일 만에 사표를 내고 관직에서 떠나면서 나라 앞에 한 말 중의 한 구절이다. 학자! 맞다. 한국 제일의 대학의 교수이니 당연하다. 지식인? 아니다. 지식을 가진 바른 사람은 아닌 듯싶다. 어느 분야에 많이 그리고 깊이 안다는 것만으로 지식인 이라니 결코 그렇지 않다. 지식을 가진 재간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한국의 지식인으로 자처 하고 있다. 한국의 모든 지식인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한국의 참된 지식인들의 처신이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를 지원하거나 반대하는 모임을 보자. 양쪽 다 그를 보고 여러 이유로 연결된 사람들이 모였다. 그 사람의 능력을 인정 하면서 그의 잘못 된 처신까지 용납한다면 한국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어떤 일이든 찬반은 꼭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바름은 거래가 아니며 흥정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나름대로 공감의 심정은 이해 하지만 현실의 사건에 대한 의견들이 바름을 그르치게 하는 무리한 모습은 우리시대의 모습이구나 싶어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하다.

 

모인 숫자가 많으면 많은 만큼 더 위험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모두의 약속이며 결단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물질과 권력과 조직과 거래를 하면 근본과 중심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세대가 되기 때문에 걱정이다. 시대와 현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경계를 허물어버린다면 그 세대는 불안하게 된다. 분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분란의 중심에는 항상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지식인들은 겉으로는 나라를 위한다고 말한다. 속은 다르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내게 유익 할 것인가? 를 남들이 모르게 추구한다. 이런 사람이 학자이며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그와 그가 몸담고 있는 단체와 학계와 그에게 배우는 후예들에게 그는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 그의 지식은 눈에 괴로운 끄름을 내는 좋지 않은 불쏘시개일 뿐이다.

 

검찰개혁! 해야 한다. 언제부터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 한다. 전 법무부 장관의 온 가족들을 다루는 검찰의 모습은 그동안 보았던 검찰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저럴 수 있구나 저래야 하는 구나. 너무 낯설다. 그래서 섭섭하고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청사가 화면에 나올 때면 안정감이 있는 풍만한 여인이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앉은 동상이 나온다. 내민 한 손에는 이리도 저리도 기울지 않은 수평을 이룬 저울이 들려 있다. 왜 여인일까? 아마도 어머니의 심정으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생명사랑이리라. 눈을 가린 것은 보이는 것이 판결을 그르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리라. 그동안은 볼 것이 있는 사람과 볼 것이 없는 사람에게 법 적용은 분명히 달랐다. 법을 권력의 시녀라고 까지 말들 했다. 아니 그래왔다고 반성하는 말들이 그 안에서 솔솔 나오고 있다. 정치에다 사상과 이념의 옷까지 입힌 두 모임의 줄다리기 사이에 낀 것 같은 검찰총장의 모습에서 고대 중국의 법 집행관인 포청천을 보고 싶은 것이 무리 일까? 임기 안에 어디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저울의 균형 잡힌 모습을 실천하기를 바라고 있다.

 

비위 상하는 말이 또 하나 있다. 법에는 저촉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도 법을 잘 알기 때문에 법과 현실 사이의 틈을 오리조리 잘도 빠져 나가며 잘도 이용하고 있다. 심증은 가는데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증거가 있는데도 규정에 없거나 있는 법의 틈을 비집고 작고 적은 것도 다 챙기고 있어도 뭐라 말 할 수가 없다. 법을 너무도 많이 아는 자로 나쁘게 법을 이용하는 모든 모양이 그의 삶의 자취에서 드러나고 있다. 모든 것을 법대로 하겠노라는 말에 기대한다. 또 법의 한계와 미흡함을 인정하고 지성과 학문과 실세를 자처하는 자들의 꼼 수를 막을 수 있도록 법과 규정을 보완하기 바란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라는 선언이 실천되기 바란다. 이것이 개혁의 핵심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너와 나는 지금 그 자리와 위치에서 생각하며 말하기를 조심 했으면 싶다. 그 많은 말들이 괴변이라면 다르게 보는 시각으로 생각하게 하니 차라리 애교로 귀엽게 보련만 누가 듣고 보아도 낯간지럽게 하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싶다. 말은 소통을 위한 것이다. 잘된 말은 복잡하고 어렵지 않다. 누구에게나 바름과 유익함을 준다. 때로는 침묵도 말이 되고 가르침이 된다.

 

그런 말은 참 아름답다. 언어인 말의 변하는 그 모습이 다양하다. 활자를 넘어 영상으로 이제는 전파를 타고 순식간에 온 세계 저 뒤까지 듣고 보고 읽혀지고 있다. 말은 실천보다 앞선다고 했던가! 자신이 한 그 말이 신뢰를 받으려면 자신이 한 말을 현실이 되게 사는 삶이 있어야 한다. 말이 실천되어 질 때 그 말은 좋은 말이 되고 아름다운 말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가 어렵다고들 하는 것이다. 말은 바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나게 한다. 모든 말들의 듣기 좋은 세상을 가슴에 담고 일구어 가자. 모든 말에서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는 지혜가 있는 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                                       (창현교회 원로목사, 전 한신대학원 객원교수)